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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문의
글쓴이 : 김익열 날짜 : 2015-10-05 (월) 13:26 조회 : 811
귀하의 출판사를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이 따로 있는지 궁금하지만, 일단 출간의뢰를 하고자 합니다. 책 제목은 <나는 철학자다.>이고, 저자는 제가 독일에서 같이 1년을 같이 생활한 분입니다. 책의 소개는 완성된 번역 원고의 서문과 목차로 대신하겠습니다.
목차

번역을 시작하면서
서문
모토 페이지
인용 문헌

1. 기억의 시작
2. 나의 고향 니더스프레. 나의 형제
3. 귐나지움 아우구스툼
3.1 히틀러. 국가사회주의
3.2 졸업
4. 노동봉사
5. 대학생활 
5.1. 바일부르크 교육대학
5.2 프라이부르크. 마틴 하이데거
5.3 베를린, 니콜라이 하르트만
5.4 전쟁
5.5 군생활 
5.6 포로 생활 ·
5.7 하이델베르크. 칼 야스퍼스
6. 스프링어 출판사
6.1 Studium generale
6.2 H.G. 가다머
6.3 페르디난드 스프링어
6.4 술잔을 비우다
7. 연극: “하빌리타치온”
8. 엘피스 출판사 GmbH
9. 독일의 현주소
10. 과거로의 여행
11. 곧은 길 위에서
12. 유대인
13. 나는 철학자다


번역을 시작하면서...
2002년 여름. 내가 독일유학의 마지막 1년을 보낸 곳은 하이델베르크였다. 나는 방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한 노인의 목소리를 접한 나는 매우 흥미로운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무슨 공부를 하고 있습니까?” 독일에서의 모든 시간을 라틴/희랍 문학을 공부했지만, 나는 전공인 철학을 공부한다고 했다. 그러자 노인이 한 문장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철학자입니다.” 그리고는 내게 집으로 찾아오라고 했다. 나는 벌써부터 방세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먹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하더라도, 독일 사람들이 돈 문제에 대해 얼마나 철저한지! 이층 한 층을 세 내어 사는 노인은 당시 나이가 80을 넘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 넓지 않은 거실은 마치 작은 도서관처럼 책 진열장으로 채워져 있었고, 노인은 거실과 자신의 방을 잇는 15평 남짓한 비교적 넓은 개인 사무실로 나를 안내했다. 그리고 잠깐 동안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책상 앞에 앉은 노인은 나를 옆에 세워둔 채 이런 저런 질문을 하면서 계약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방세를 묻기도 전에 내게 계약서를 건네면서 같이 지내자고 했고, 나는 그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때 그의 얼굴은 마치 방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처럼 가벼운 미소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을 나서려고 할 때, 문 쪽 벽 위에 걸려 있는 유일한 사진인 야스퍼스의 굳은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야스퍼스는 Thiel 씨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이자 그를 가장 잘 이해해 준 사람이었고, 또 그가 유일하게 존경한 스승이었다. 
노인의 하루일과는 매우 단조로우면서도 규칙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뜨거운 음식을 식탁위에 올려놓고, 음식이 식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개인 사물실로 들어가 그곳에 놓은 피아노를 연주했다. 만약 밖에서 그의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면, 그의 나이를 제대로 맞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의식은 그가 저녁 식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매주 두 번씩 병역 대신 공익요원을 선택한 아주 젊은 청년이 아침 일찍 방문해 그를 위해 간단한 시장을 봐주고 집안 청소를 해주고 갔다. 노인이 매일 아침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한 움큼의, 말 그대로 한 움큼의 알약들을 입안에 넣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며칠 후였다. 그는 거의 40년간 그렇게 해오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가 내게 부탁한 것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그가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한 목욕을 하는 동안에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다행이 그의 일과 시작이 너무나 규칙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는데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또 다른 부탁은 거실에 마련된 자신의 작은 도서관 책들을 ‘헤집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호기심 많은 사람이라면 그 약속을 지키는 게 얼마나 어려울지 잘 알 것이다.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그는 좀처럼 내 방문을 두드리는 일이 없었다. 심지어 같이 부엌에서 부딪히는 것조차도 불편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늦은 저녁에 그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그는 내일 한 학회의 초대를 받아 1주일 간 뉴욕을 방문한다는 말을 해주었고, 나는 그 말을 1주일 간 그의 개인 도서관을 마음껏 ‘헤집어’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었다. 물론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따르겠지만. 그가 소장하고 있는 책들은 대부분 얇고 오래된 것들이었는데, 대학생들이 세미나 혹은 아르바이트 논문을 쓰기 위해 참조하는 교수들의 박사학위 논문과 일반 논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논문을 쓸 때 참조하는 교수들의 책은 두꺼운데, 그들의 박사학위 논문은 얼마나 얇은지. 더 놀라운 점은, 그 논문들이 단지 플라톤 대화편의 일부를 원본 그대로 인용 편집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이제 나의 관심은 나의 주인인 Thiel씨가 저술한 책들로 향했다. 바로 내 방문 앞에 세워둔 2단짜리 작은 책장에는 유리 미닫이문이 달려 있었고, “Thiel, Methode Bd. I,II,III... Philosophie”전집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XII권을 펼쳤는데, 놀랍게도 그 내용은 그의 자서전이었다. 자신의 자서전을 그렇게 전집의 한 부분으로 한 것은 아마도 그것이 오직 관심 있는 사람들만을 위해 쓰였음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자서전에는 자신의 삶과 대인관계 외에 개인적으로 충격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특히 소련군이 동베를린에 있는 그의 아내의 부모 집을 점령하는 동안에 신혼인 그의 아내를 거의 2주 동안이나 윤간했다는 사실은 말 그대로 너무 충격적이었다. 이제 나는 주인이 돌아오면 표정관리를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Thiel 씨는 먼저 내 방을 찾아와 하나의 표창장을 보여주며 행복하게 웃었다. 그리고 이 표창장이야 말로 자기 생애에서 가장 받고 싶었던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다시 여러 날이 지나갔다. 피아노 연주를 마친 그가 저녁식사를 하려고 부엌에 나타났을 때, 나 역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재빠른 동작으로 숨겨서 가져온 틀리를 입에 끼우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아마도 느꼈다고 해야 할 정도로 민첩한 동작이었다. 이제야 나는 그가 같이 부엌에 있는 것을 불편해하는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궁금증을 풀어야만 했고,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묻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나는 질문을 에둘러 표현해야만 했다: “당신은 언제부터 혼자 살게 되었습니까?” 그러자 그가 빙긋이 웃으며 대꾸했다: “하, 당신은 내 자서전을 읽은 모양이군요.” 그는 아내가 60세가 될 때까지 그녀의 아픈 몸을 돌보며 같이 살았다고 했다. 더 이상의 궁금증은 너무 잔인한 질문이 될 것 같았다. 이후 우리는 가끔씩 부엌에서 대화를 할 기회를 가졌는데, 그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은 매우 단순했다. 하이데거와 그의 추종자들을 경멸하는 것, 정치적인 신념은 한 마디로 liberal, 그리고 1년에 책 한 권씩을 저술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 특히 그는 하이데거가 나치 제복을 입고 연단에 서서 히틀러 흉내를 내며 연설하는 것을 말하면서는 극도의 적개심을 보일 정도였다: “Mieser Charakter!”  그리고 1년 후 그가 베푼 약간의 금전적인 도움으로 나는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2005년에 다시 독일을 방문했을 때, 나는 옛 주인 Thiel 씨의 자서전을 얻고 싶었다. 먼저 전화로 허락을 받고 그를 찾아 갔을 때, 그는 티 없이 깨끗하게 다려진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채 나를 반겨주었다. 단지 변한 게 있다면, 그렇잖아도 크다고 느꼈던 그의 눈 한쪽이 더 이상 감겨지지 않아, 그는 계속해서 새어나오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연신 훔치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책 첫 장에 몇 글자를 적고 내게 건네주면서 미소를 지었다. Herr Kim, Ik Youl in gedanken an dem Aufenthalten in Heidelberg 2002. Heidelberg, 21, 6, 2005 Dr. Thiel“ Thiel 씨의 자서전은 7개의 소제목으로 이루어졌다: 1. 나의 고향 2. 전쟁 3. Studium generale 4. 술잔을 비우다 5. 엘피스 출판사 GmbH 6. 곧은 길 위에서 7. 세 마리의 용. 그런데 문제는 저자가 이야기를 어떤 구체적인 계획아래 서술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마치 그날그날 산보하는 길에 떠오른 기억을 집에 돌아와 기술한 것처럼, 이야기는 시간적인 일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반복적이고 뒤죽박죽으로 되어있다. 거기에다 저자의 개인사적인 이야기와 철학적 사고가 만나는 곳에서는 한마디로 그 둘을 구분해 편집하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당시 나는 2,3년 안에 책을 번역해 출판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지금까지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책을 본문에 맞게 순차적으로 번역하면서 최대한 시간적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과 반복적인 내용과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그야말로 난해하면서도 수준 높은 철학적 내용을 골라내는 것이 전부였다. ‘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중 혹자는 그를 단순히 소외된 자의 푸념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바보가 아니다. 그는 남들에게 자신의 불만을 얘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다. 만약 누군가 자신의 황금기를 잘못된 체제 속에서 보냈다면, 그는 평생 동안 그 체계를 비판할 권리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5 18과 같은 암울한 시대의 피해자가 평생 그 상처에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반대로 가해자의 입장에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빨갱이란 표현방식을 ― 요즘은 공식적인 매체를 통해 종북이란 표현을 당연하게 사용하는 것 같지만 ―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존재하지 않는가! 저자의 표현대로,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전체를 보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본 것에 동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그저 자신의 입장에서 읽어 주길 바랄뿐이다. 만약 이 책을 읽고 나서 저자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에게 반감과 비판을 불러일으키는 내용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저자가 말하는 철학자의 의미는 그저 철학적 사고와 철학적(?) 생활방식이 아니다. 아니, 그것은 저자가 말하는 “철학적”이란 말과 하등의 관계도 없을 것이다. 저저가 의미하는 “철학적”이란 말은 먼저 철학이라는 학문을 알고 학문의 격식에 맞춰 책을 쓰고, 그리고 나서 세상을 철학적 시각으로 통찰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도 우리는 한 분야에서 석학이라는 명성을 얻은 사람들의 글이 표절 혹은 사기로 드러나는 것을 종종 듣게 되는 데, 이는 그들이 그런 기본적이라 할 수 있는 학자로서의 자세를 갖추지 못한 데 있는 것이다. 
내가 Thiel 씨를 다시 찾았을 때, 그는 2004년에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저술했고, 지금은 코란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만약 아직도 그가 살아 있다면, 그는 1년에 철학 서적 한 권을 출간한다는 평생을 약속을 계속 지켜나가고 있을 것이다. 이는 그 자신의 각오이기도 하다: “내가 백만장자가 되었더라도, 나는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을 계속할 것이다.”비록 희망적이지만, 내가 지금도 옛 주인이 살아 있고, 오랫동안 건강하기를 매우 간절히 바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서문
내 안에서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 나는 이 책을 쓰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은 이미 이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나가면, 사람들은 내게 자서전을 쓸 것을 요구한다. 또 국내외 친구들도 반드시 자서전을 써야 한다고 강요한다. 그들은 그것을 읽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 요구를 거절해 왔다. 왜냐고? 나는 철학자다. 나는 시인이다. 나는 진리에 대한 책무를 지고 있다. 그 말은 고차원의 정신을 추구하면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신을 버리고 잊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세상이 모든 것이다. 모든 것! 이 말은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완전한 의미를 가져야만 한다. 나에게 있어서 개인 삶이란 없다. 도대체 개인의 삶이란 게 뭐란 말인가? 만약 그것이 한 개인이 자신의 삶 속에서 겪어야만 하는 운명을 의미한 다면, 그것을 글로 옮긴다는 것은 오히려 끔찍한 일일 것이다. 즉, 내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나는 사람들에게 아부를 하거나 그들로부터 동정을 받기 위해 혹은 직간접적으로 고발하거나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끔찍한 일들을 글로 옮기고 싶지 않다. 나는 불평하지도 않고, 고발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묘사하고 보고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내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충분한 비난이 될 것이다. 비난은 더 냉정하고 더 사실적일 것이다. 최고의 비난은 엄격한 묘사다. 철학자로서의 나는 감성적이어서는 안 된다. 감성적인 것은 감성적이지 않은 사람에게 또 다른 문젯거리를 제공할 뿐이다. 친인척 관계에 묶여 있다는 이유로 아직도 국가사회주의 성향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유대인들 중 이제 나이가 든 많은 이들이 자신의 자서전을 쓸 것을 요구 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나는 그저 고개를 가로 저을 수밖에 없다. 만약 독일 국민이 그런 요구를 받았다면, 그들은 자신의 자서전들로 도서관들을 가득 채우려고 하거나, 아니면 이미 가득 채웠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 국민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들은 아주 다른 방법으로 대응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책을 쓰고 있다. 주위 사람들의 요구에 마음이 약해진 것일까? 이 책을 쓰지 않을 이유는 너무도 많다. 철학을 위한 나의 삶은 너무도 짧다. 나는 두 개의 삶이 필요했고, 절반밖에 살지 않았다. 즉, 사람들이 나머지 절반의 삶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나는 시간이 없다. 이 책은 내가 투자할 수 있는 것 보다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이 일은 내가 철학에 써야할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이 책을 쓰고 있다. 더 이상 나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반복해서 말하지만, 나는 철학자다. 나는 시인이고 매우 뛰어난 피아니스트다. 나는 삶 전체를 통해서 관찰자이자 분석가이고, 철학적 통찰과 진리를 위해 살아왔다. 그러면 나의 자서전은 한 철학자의 사상을 설명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비록 아직 무슨 내용으로 채워져야 할지 전혀 알 수는 없지만, 많은 관점에서 철학이어야 하고, 독자들의 사고를 자극하고, 또 내가 놓쳤을 지도 모를 통찰력을 줄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나 역시 나의 삶에 호기심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이, 내가 지나 왔던 삶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 같다. 이 책은 하나의 독백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쓰지 말아야 할 일반적인 이유가 하나 있다면, 엄격한 의미에서 자서전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자서전을 쓰도록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실망할 것이다. 아니면 독자들을 실망시킬 것이다. 하이데거 추종자들이 종종 그런 요구를 한다. 하지만 나는 하이데거 추종자들과는 전혀 다르다. 자서전은 대개 기억서로서 쓰여 지는데, 이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리고 가능하다면 자신 앞에서 연출하기 위해서이다. 그러한 동기를 떠나서 여전히 하나의 질문이 남아 있다: 만약 최고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시와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자서전을 쓰려고 하는 사람은 확실히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은 다양하게 표현된 허구 속에 많은 진리가 혹은 진리 속에 많은 허구가 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 있고, 또 하나의 문학 작품을 얻게 되리라고 희망할 수 있다. 시적 재능이 없거나 시를 배제하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기억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즉, 그가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기억과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비스마르크는 <기억과 생각>이라는 제목을 선택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가장 솔직한 제목이다. 즉, 그 제목 하에서는, 만약 모든 것을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택을 해야만 한다면, 비본질적이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배제하는 것이 언제나 가능하다. 따라서 “생각과 기억”이라는 제목 하에서는 생각과 기억만을 제공한다. 하지만 진리와 솔직함이 요구된다면, “생각과 기억”은 결코 제목으로 사용되어 질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철학자이자 시인이기 때문에, 나는 시를 위한 나의 가치기준과 삶의 원칙을 말할 수 있어야만 한다. 내가 시인들로부터 기대하는 것은 먼저 그가 진정한 시인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는 그가 진정한 시적 재능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다음으로는, 시인은 사고하는 시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시인을 시인으로서 평가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오직 그의 사고뿐이다. 세 번째로는, 그가 훌륭한 관찰자이자 기술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시인으로서 이 책을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 하고 싶다. 나는 사고하고, 시 없이 기술하고자 한다. 이 책이 시적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다만 시가 필요할 때가 되면, 이 책 어디엔가 나타날 것이고, 그때 나는 철학자이자 기술자가 될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관찰자와 기술자로서의 철학자이다. 만약 이 책이 자서전적으로 쓰여 진다면, 나는 철학자의 자세로 임할 것이고, 철학적 사고의 본질은 모든 것의 사고이자 사고의 완전함이다. 철학자는 언제나 사고한다. 그 말은 모든 면에서 사고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자는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그의 자서전은 보고와 사고의 혼합체 일 뿐, 결코 한 시대의 흐름을 이야기 하는 것이 될 수 없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 자서전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 시와 생각들이 쓰여 지는 것은, 그것들이 나의 삶을 모든 면에서 사실적으로 보여 주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맹세와 함께 쓰여 지는 작품은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럼 나는 이 책을 어떻게 써야하는가?
가능한 한 아무것도 놓치지 않는, 순전히 연대기 적인 보고는 의미가 없다. 철학적 내용을 담은 자서전은 절대로 그것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철학적인 관점과 연대기적인 관점은 반드시 서로 겹쳐지게 되고, 그 결과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 역시 피할 수 없게 된다. 아니, 반복은 반드시 필요한 것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철학적으로 중요했던 삶은 압축되어 쓰여 진다. 쓰여 진 이야기는 단편들이고, 어쩌면 쪽지나 일기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문학적인 미와 수사적인 미는 기대되어 질 수 없다. 그러나 생각은 순간적인 일들을 훑고 지나간다. 나는 가능한 한 짧게 쓸 것이다. 내가 본질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을 쓸 것이고, 독자는 거기에서 사건에 대한 나의 태도를 함께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내가 철학자로서 취한 방법을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방법이란 내가 두 개의 철학에 대해 써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방법은 학문을 통틀어서, 그리고 학문 안에서 존재론을 다루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창조자의 영역, 절대적인 존재의 영역을 형성하지 않고, 즉 그런 영역은 학문을 통해서는 채워질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칸트 철학에서처럼 공허한 채로 남겨둔다. 또 다른 방법은 한편으로는 절대적 사고의 형이상학적 계획과 같은 것으로, 이는 플로틴의 사고방식과도 매우 유사하다. 이 두 방법은 하나의 상승을 전제로 한다. 또 학문을 통해 완성된 작업이 일반적으로 두 번째인 플로틴적인 형이상학과 일치하고, 나아가 전체적인 존재론을 드러낼 수 있도록 처음부터 계획되어져 있음으로써 그 두 방법은 상승이라는 이름 하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하지만 내 철학적 사고의 방법은 다른 모든 철학자들에게서처럼 삶을 통해서 이해되어질 수 있다. 한편으로 철학적 방법의 의미와 철학 수업에서 다루어지고 이해되는 것들은 모두 삶 속에서 생성되고, 그 자체로 포괄적인 사고 전개의 한 부분이다. 삶의 대부분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또 과거를 현재화 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특히 시선을 더욱 더 먼 과거에 두면 둘수록 계속해서 과거를 잊어가고 있다. 이 문제는 해결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이 의도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내 삶에 있어서 가장 놀라운 점은, 나는 절대적인 영역과 창조적 행위의 영역이 배제된 존재론을 학문적으로 다루면서도 시를 위한 노력의 기회를 버리지 않았고, 반대로 오직 형이상학적인 형상에만 관심을 쏟아 부었던 예전의 철학자들은 자신의 시적인 재능을 살리지 못 했다는 사실이다. 추후 내가 존재론적 계획을 플로틴적인 방법으로 시도해 보려고 했을 때, 한편으로 사실의 내용이 ― 플로틴에게 있어서의 일자의 본질 혹은 일자의 구체성이 ―, 다른 한편으로 시적 능력이 나를 혹독하게 단련시킴으로써 내가 형이상학과 시 모두를 포기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나는 철학자이자 시인이었다. 이 둘은 서로를 방해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서로에게 상반되면서도 훌륭한 도움을 주었다. 그 둘은 자신들의 완전한 권리를 얻었고, 또 높은 정신에 도달했다. 사람들은 그런 정신을 충분히 알 수 없고, 만약 알기를 원한다면, 그런 정신으로 살고 그런 정신에 도달해야 한다. 이제 나는 그 둘이 서로 동일한 방법으로 하나의 형상임을, 철학이자 시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다.
두 번째로 놀라운 점은 대학과 관련한 쇼펜하우어의 능력이다. 쇼펜하우어는 본질적인 것을, 20 세기에, 그의 사후 거의 100 년 동안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영향을 미칠 어떤 것을 미리 알아차렸다. 철학은 사라졌고 이전의 철학자들은 ‘행위를 위한 수단’의 표현을 제대로 이해할 능력이 없으며, 또 진리란 존재하지 않고 교육은 필요하지 않으며, 자기사고란 낡은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 만약 쇼펜하우어가 정치적인 길을 걷는 그런 철학 선생들이 대학 교수직을 차지하는 것을 미리 알았거나 직접 눈으로 보았다면,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상황을 비판함에 있어서 감히 그렇게 신랄한 비난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쇼펜하우어의 저작물에서 모토페이지를 발췌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렇게 나쁜 것은 아무것도 없다거나 혹은 더 나빠질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결코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쇼펜하우어가 철학 교수들을 모두 대학에서 몰아내자고 제안한다면, 아무도 그에게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즉, 철학은 시대의 상황과 관계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상황에 의해 자극을 받기도 한다. 사람들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따라서 사람들은 소명을 받은 사람의 성격을 ― 쇼펜하우어는 ‘그의 의도’ 라고 말했다 ― 확인해야 한다는 쇼펜하우어의 충고를 따라야 한다.
집주인이 집 내부를 새로 단장한다는 이유로 3 일 동안 오전 9 시에서 오후 5 씨까지는 계단을 이용하지 말 것을 알려왔다. 이제 나는 3 일 동안 집 안에 갇혀 지내야만 하거나, 아니면 집 밖에 머물러 있어야만 한다. 나는 강 건너에 있는 크리스나켁테로 간다. 그곳은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200 미터 거리에 있다. 그곳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다. 그들은 최근에 야채 셀러드를 파는 레스토랑을 개업했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3 일 동안 레스토랑 안에 앉아서 글을 쓰는 것을 허락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전혀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다.
                                                                          Dr. Thiel.